뉴질랜드에 가면 키위새가 있다. 이 키위새는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이다. 마치 생김새도 키위를 닮았다고 해서 키위새라 불리운다. 이 새는 원래 잘 나는 새였다고 한다. 그런데 과일과 열매, 벌레들이 많은 뉴질랜드에서 구지 날지 않아도 먹이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날개의 기능을 잃어버려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이새의 특징은 비옥한 토양에서 벌레를 잡아 먹다보니 새의 가장 중요한 두 특징인 날개와 눈이 다 약화되고 부리와 다리가 발달된 것이다. 그렇게 키위새는 무늬와 모양만 새이지, 땅만 후비며 사는 새가 되었다. 새의 매력과 능력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새가 된 것이다.

공중을 날며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는 ‘세 천사’는 바로 재림 청년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이야기한다. 화잇 부인은 청소년보다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계층은 없다고 말씀했다. “청년들이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애를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 (MYP 66) 따라서 사단은 청소년들의 결심과 헌신을 크게 두려워 한다. 구주이신 예수 앞에 깨어진 옥합이 될 수 있다면 청소년들은 크나큰 향기를 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 앞에 자신의 옥합을 깨뜨리고 헌신할 수 있는 청소년을 하늘은 지금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땅의 달콤한 열매와 과일과 벌레로 만족하며 사는 키위새와 같은 영혼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밖에 버려져 밟힐 뿐인 삶이다. 우리는 우리의 옥합을 깨뜨리고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하늘을 날며 세상 끝까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세 천사’가 되어야 한다.

한 번은 교회 청소년 지도자들과 청소년들의 잔존율에 대한 토론을 하며 그 잔존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청소년들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영적 경험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바로 선교사로 지원하여 훈련 받고 선교 사역의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선교지에 파송된 청소년은 선교사로서, 갈대 상자에 담겨져 하나님께 맡겨진 나일강의 모세처럼, 믿음 하나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여 그분의 인도하시는 길을 찾으며 또 이루시는 하나님을 대면하게 된다. 그렇게 거룩한 존재와의 협력은 영적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마치 각각4t의 무게를 끄는 두 말이 함께 끌 때는 22t의 무게를 끌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연합이 측량할 수 없는 선한 감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수 23:10). 그리스도 예수 앞에 깨어진 옥합처럼 한 명의 청소년이 선교사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여 주와 연합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드려짐을 인하여 천명의 영혼을 어두움의 세력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도전의 말씀이다.

코로나 상황이 여전히 전 세계 각 곳에 한창이다. 그 와중에 선교사로 지원한 청년들과 부모님, 교회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한 선교사 어머니는 선교사 지원과 면담을 위해 자녀를 차에 태워 고속도로 산 자락을 오르며 면담의 장소로 향하는 길이 마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딸을 바치라고 하신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 같았다”고 커뮤니티에 심경을 적었다. 그 어머니와 딸은 그렇게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맡겨진 종들을 통해 “천명”의 영혼들이 주께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계11:19)는 지성소 봉사의 대속죄일을 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선 백성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정함을 고백하는 성도는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으로 정결함을 받고 부르심에 응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것이 재림청년들을 살리는 일차적인 영적 경험(Firsthand Experience)이요, 이 시대의 남은 백성이 살아가는 방식이다.